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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주어가 바뀌어야 합니다.”

 18:10-14 (본문읽기)

바리새인들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다윗의 영광을 회복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때에 관심을 갖고 예수님깨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 나라 자체이시라는 것이지요. 그러시면서 인자-예수님이 다시올때 일어날 일들에 대해 경고해 주셨습니다(눅 17장). 그다음에 이어지는 권면의 말씀이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것”에 대한 비유입니다. 오늘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 대한 비유는 대강절을 맞이하면서 다시오실 주님을 준비하기 위해 기도해야 하는 신앙인들의 바람직한 기도의 자세입니다. 바리새인과 세리 두 사람의 기도의 가장 큰 다름은 기도의 주어에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나, 자신”이 주어이고, 세리의 기도는 “하나님”이 주체입니다. 바리새인은 자기의 의를 고하고 드러내기 위한 기도이고 세리의 기도는 그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앞에 죄인된 모습으로 나아왔음을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자의 기도의 자세는 세리의 기도와 같이 자기를 낯추고 주님의 긍휼을 구하는 자세가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럴때에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인자가 오셔서 높여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첫 성탄을 맞이한 사람들의 마음의 자세도 그러했고 오순절 성령강림의 현장에 있었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마찬가지로 재림의 주님을 고대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기도의 자세도 하나님이 주어가 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첫째, 가슴을 치는 기도입니다.하나님 앞에서 죄인일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우리의 모습을 고백하는 것입니다.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며 답답하고 괴로워 부르짖는 심정의 기도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히 여기심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자신의 죄인됨을 벗어날 수없고 내세울 의나 핑게도 없으며 그저 하나님의 은혜만을 힘입기 원하는 기도입니다. 셋째, 새로운 삶을 결단하는 기도입니다. 죄인됨의 고백과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의 전제는 용서함 받아 비록 다시 넘어지고 실패한다 할지언정 새로운 삶의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여전히 세리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의로운 세리로, 남을 배려하고 용서를 구하는 변화된 세리로 살겠다는 결단의 기도입니다(예수님을 만난 후의 삭개오). 과연 여러분의 기도의 주어는 누구입니까? 하나님께 “이정도면 괜찮지요?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봉사하고 있지요? 세상살기도 바쁜데 이정도 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낫지 않습니까?” 등등의 자세로 믿음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하나님께 나아가 섯을때의 기도는 그저 겸손히 죄인됨을 고백하는 세리의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외식함과 교만에 대해서 책망하셨지만 그들의 거룩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의 노력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기도는 세리와 같이 삶의 모습은 바리새인과 같이”가 주님의 다시오심을 준비하는 대강절에 합당한 자세임을 보게 됩니다. 이 대강절을 통하여 기도로 낙망하지 말고 주님이 언제오시더라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된 삶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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