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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9/29) 창세기 2: 18-24

묵상요절: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 어린아이가 말문이 터지기 시작하면 귀찮을 정도로 ‘이건 뭐야?’ 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하게 됩니다. 부모 손을 잡아 끌면서 신이 나서 사람이든 물건이든 만나는 대상을 향해서 이름을 묻습니다. 그리고 부모는 이름을 말해 줍니다. 그렇게 해서 아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과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과 하신 일이 바로 그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에게 아담이 이름을 지어 주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잡고 모든 것이 신기해서 에덴 동산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아담의 모습이 상상이 됩니다.) 아담이 이름을 지어 주는 것마다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 일은 지금도 아담의 자손들에 의해서 계속 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여자도 아담이 지어준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존재로서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남자로 말미암아 존재케 되는 존재, 그런데 본래는 한 몸인 존재가 여자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하나님께서 두신 창조와 존재의 신비함 그 자체입니다. 이 신비가 지켜질 때에 창조와 존재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는 김춘수 시인의 ‘꽃’ 이란 시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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