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5/11) 사도행전17:22 – 29
묵상요절: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 사람들이 미신을 많이 믿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 두려움의 원인은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의 노력으로 찾아보지만 찾을 수 없고 만족할 수 없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대 사람들은 금과 은 같은 것으로 신을 형상화해서 그 앞에 제물을 바치면서 신들의 저주와 분노를 피하려고 섬겼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신은 무언가 필요를 만족시켜 줘야 화를 내지 않는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두가 다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결과들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떤 필요가 있으신 분이 아니라 모든 것들의 주인이 되셔서 오히려 우리의 모든 필요를 베풀어 주시는 창조주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사람들이 참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신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됨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종교성이 많은 것과 참 하나님을 아는 것과는 별개입니다.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들이 종교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인생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