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8/26/2019) 예레미야 2: 4 – 13
묵상요절: “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어 이같은 일의 유무를 자세히 살펴보라 어느 나라가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너 하늘아 이 일을 인하여 놀랄찌어다 심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찌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이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10, 11, 12, 13 절)
* 물질–풍요의 유혹만큼 강한 우상은 없습니다. 일단 빠지면 밑이 빠진 독에 물 붓는 허탄한 일인 줄 알면서도 계속 붓게 만듭니다. 물질의 풍요에 대한 욕심은 아주 실제적이기때문입니다. 배은망덕도 불사하고 심지어 물질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 놓는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구원하시고 가나안 땅에 인도하신 하나님을 져버리고 한갓 ‘바알’ 형상을 신처럼 대신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오늘날 물질 앞에서는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같은 교우들도 보이지 않는 세대가 된 것도 바로 ‘바알–물신’의 유혹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천지의 주재가 되시고 우리의 삶을 붙들고 계신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되고 계속 터진 웅덩이에 물을 붓다가 그 욕심의 허탄함으로 결국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알에 사로잡힌 시대의 총체적 영적 난국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경고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결코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을 대신해서도 대신 할 수도 없음을 알고 허탄한 길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물질은 ‘바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