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20, 21 (06/13/20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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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욥기 20 -21  우답에 현문
묵상요절(필사):
* 잘 모르는 일에 대한 완고한 답을 주장하기보다는 솔직히 무지를 인정하고 어찌 그런 일이 있을까 질문을 갖는 것이 더 현명한 자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물며 친구들의 우답들은 욥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욥이 납득할 수도 없습니다. 차라리 그냥 함께 아파해 주고 울어주고 욥과 함께 고민을 해주었으면 그것이 진정한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스스로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등장한 소발은 욥을 악인에 빗대어 악한 일은 오래가지 못하고 분명히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 앞에 아주 비참하게 끝나버리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실제로 그런 일들은 경험하고 보았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자기 주장을 위해 실제 있지도 않은 일들까지도 상상해서 만들어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욥의 답은 모든 인생은 매 한가지로 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게 되겠지만 살아가는 중에는 이해할 수 없는 악인의 흥함도 있고 바로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일은 알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의 고난에 대해서 물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욥에게 친구들의 주장은 위로는 커녕 거짓된 우답에 불과할 뿐입니다.
때로 욥의 친구들처럼 잘 모르는 것을 확신을 갖고 주장할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잘 몰라서 더 강하게 주장하는 지도 모릅니다. 문제의 본질에 대한 고민보다는 자기의를 주장하고 자존심을 내세우려는 교만이 우답을 만들어 냅니다. 이는 그 의도에 있어서나 담긴 내용도 전혀 현명하지도 바람직하지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드러내는 답이 되지 못합니다. 차라리 겸손히 무지를 인정하고 왜 의인이 고난을 받아야 합니까?’ 솔직히 묻는 것이 현명한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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