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다스리는가?” (02/09/2020)

삿8:29-9:21 제목 : “누가 다스리는가?” <암송구절>“이제 너희가 아비멜렉을 세워 왕을 삼았으니 너희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이것이 여룹바알과 그 집을 선대함이냐 이것이 그 행한대로 그에게 보답함이냐”(삿9:16) 비록하나님을잊어버린시대였지만이스라엘백성들의다스리시는왕은하나님이셨습니다. 사사들은대리자였습니다. 이를기드온도잘알고있었기때문에백성들이혁혁한공을세운자신을왕으로세우려했을때에만류하고고향땅으로돌아간것입니다. 그런데하나님의사람이었던기드온에게도어두운면이있었습니다. 전쟁이끝난후에탈취한금으로에봇을만들어우상처럼지니고있었고많은부와명성을누리면서많은아내들을취한것입니다. 심지어그의가문에큰분란을일키게될이방인첩까지두었고그에게서태어난아들의이름을 ‘아비멜렉’(나의아버지는임금이시다)이라이름한것입니다. 그첩의아들로인해기드온사후에칠십명의아들중에요담만빼고다죽임을당하고, 사람들을꼬드겨스스로왕에오르게된것입니다. 그일에대한예언과같은예화가요담을통해선포된나무들우화입니다. 그리고그예언대로아비멜렉은삼년밖에다스리지못하고반란에휩싸여결국은맷돌에맞아최후를맞이하게됩니다. 스스로왕이되고자했던자와부화내동한사람들의말로입니다. 과연누가왕이되어다스려야할것인가? 사람이원하고세우고스스로왕이되고자하는세상의왕의권력아래서는진정한의가나올수없습니다. 채울수없는사람의탐욕을만족케할수없고아무리자랑하는힘도허무한것이기때문입니다. 영적암흑기와도같았던사사시대를통해서얻는교훈은과연누가우리를다스리는왕이되셔야하는가? 입니다. 또한이것은우리, 사람은무엇으로살아야하는가? 하는질문과도같습니다. 오로지하나님이우리의왕이되시고그분의율법과계명이삶의기준이될때에만공의와진리와사랑이이루어지게될것입니다.

“하나님이 잊혀진 세대” (02/02/2020)

삿2:6-23 제목 : “하나님이 잊혀진 세대” <암송구절>“그 열국을 머물러두사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시며 여호수아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셨음이 이를 인함이었더라”(삿2:23))   하나님이잊혀진세대의특징이있습니다. 채워지지않는갈급함을하나님이아닌것을하나님처럼붙들고살아갑니다. 그갈급함의원인을세상의물질과쾌락으로해결하려고합니다. 그러나더욱더그허무함과삭막함에빠져들어가게되고하나님으로부터더멀어져갑니다. 구속의역사와은혜도감동도흐릿해져가고아예잊어버리고말게됩니다. 하나님이잊혀지게되면그때부터는그의주신율법(하나님의백성의살아가는기준)도무시되고저마다자기소견대로, 원하는바대로살아가게됩니다. 그런데하나님의지침이사라진사람의방식이라는것은죄와파멸에귀결될뿐입니다. 그래서자기들소견대로좋다고살지만주어지는것은고통과어려움뿐인것입니다. 이스라엘의사사시대가그러했고오늘날이시대가그렇게되어가고있습니다. 가나안정착한이스라엘의조상들의가장뼈아픈실수는철저하게자손들에게하나님신앙을전수하지않은것입니다. 그결과를고스란히다음세대들이살아가며근본을망각한채로좌충우돌우왕좌왕하며허무한것들을좇아살아가고있는것입니다. 그럼에도유일한소망은그들을구원하시고자하시는하나님의긍휼과은혜입니다. 반복되는일에도불구하고사사들을세우셔서고통과파멸의길에서구원하십니다. 아주버리지않으시고구속의끈으로붙들고계십니다. 때로는아픈가시가바로우리를지키시는하나님의구원의도구인것입니다. 사사기를통해서우리의현실세대의모습을비춰보고 ‘제소견대로”가아닌 ‘하나님의율법대로’살아가는비결을배워야할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사람들” (01/26/2020)

살전5:12-28 제목 : “하나님 중심의 사람들” <암송구절>“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하나님의사람들은구별되는특징이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이아니라다른사람중심적이며, 그누구보다도자기관리에철저하고, 늘되어져가는삶을살아갑니다. 말하자면이것이곧성숙한믿음을가진크리스천의삶의내적외적모습입니다. 세상에서하나님의사람들로인정받기위해서드러내기위해서믿음의성숙을이루어나가야하는이유이기도합니다. 그러면구체적으로성숙한믿음을가진하나님의사람들의특징을한마디로요약한다면책임성과포용력을가지고분별된삶을지향하는자라할수있습니다. 오늘사도바울의마지막권면의말씀이고우리가듣고도전받아야할실천과제입니다. (자칫이말씀을기독교윤리나도덕적인차원으로받아들이기쉽습니다. 하지만이는지극히영적으로지금까지나눈대로우리심령의변화를통해서나타나고이루어지는성령의열매인것입니다.) 첫째로책임성에는자기자신뿐만아니라이웃에대한것까지포함됩니다. 어려운이들을돌보고잘못된이들을계도하여이끌어주는역할입니다. 품고사랑하는포용력이없이는할수없는일입니다. 둘째로분별력은자기관리에있어서매우중요합니다. 주님의뜻을발견하고생활이온전하기위해서는분별력이있어야합니다. 분별력을위해서성령을힘입어 “항상”, “쉬지말고”, “범사”에생활이필요합니다. 그럴때도우시는성령의능력으로우리의믿음이후퇴하지않고거듭성숙해갈수있고하나님앞에흠없고온전한믿음을이룰수있는것입니다. 믿음의길이곧하나님의사람으로세상에대한증거가되는것입니다. 그것이전도입니다.

“믿음의 성숙 : 마음이 새롭게” (01/19/2020)

엡4:17-32 제목 : “믿음의 성숙: 마음이 새롭게” <암송구절>“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4:23-34)   옛사람과새사람의가장큰차이는마음의변화입니다. 곧성품의변화와그에따른행위의변화입니다. 사람의모든것은마음에서비롯되기때문입니다. 그런데마음이새롭게변화된다는것은믿음을가졌다고해서자동적으로되는것도아니고말처럼쉬운일도아닙니다. 살점이떨어져나가는아픔도감수해야옛성품과습관들을벗을수있습니다. 벗어버리기에아깝고싫은것도있습니다. 하지만이제는복음의진리가무엇인지, 생명이무엇인지, 믿음으로산다는것이무엇인지주님의말씀을통해서알기때문에, 아니그것들을알고믿는다면결단해야할일만남은것입니다. 변화된새사람으로살아가는자신의모습을소망하면서새롭게하시는성령께자신을맡기는것입니다. 그리고예수그리스도를통해서하나님께서주신거룩하고의로운옷을입고있다는것을늘기억하고옛사람의행위들을끊어나가는것입니다. 무엇보다도이제는우리가하나님의소유된 “새사람”이라는것을망각함으로성령을근심케하지않고하나님아버지의성품을닮아가고자하는것입니다. 이는성품수련과정이결코아닙니다. 이미 “된자”로서 “답게”살아가기위한성숙의원리입니다.  

“믿음의 성숙 : 싸움에서 이기자” (01/12/2020)

갈5:13-24 “믿음의 성숙:싸움에서 이기자” <암송구절>“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믿음의성숙을다른표현으로하면성령의열매맺는일이라할수있습니다. 오늘본문갈라디아서에나오는아홉가지성령의열매를온전히이룰수있다면믿음생활의완성이라할수있을것입니다. 예수님의성품을완전하게입게되는것입니다. 이는전혀불가능한일이아니고그렇다고단번에쉽게되는일도아닙니다. 예수님께서보여주신모습을바라보고앙망하며닮아가는과정입니다. 한마디로믿음의성숙은인간의본성이신앙인격으로, 그리스도의인격으로변화되어가는과정인것입니다. 정신분석이나상담에서도사람의문제를해결하고나아지도록돕는일을합니다. 그것을통해서삶이질적으로좋게변화되도록합니다. 하지만이는곧잘또다른유형의문제에대해서는해결의한계를드러냅니다. 믿음의성숙은비슷해보이지만본질적으로는차원이다릅니다. 환경에대한스스로의대처혹은변화가아닌성령에의해서본성이신앙인격으로변화되는것입니다. 한번갖춰진성품은그이상의모든것을아우릅니다. 그래서행동양식이변하고삶의내용과관계가변하는것입니다. 그런데이러한성령의열매를맺는일, 신앙인격을갖춰나가는일은거저되는일이아니라계속되는투쟁-싸움을통해서이루어지는일입니다. 그러면이싸움에서승리하는비결은무엇일까요? 믿음으로얻은자유를사랑을위해사용하는것이고, 주님의말씀에순복하는일, 그리고죽어야산다는역설적믿음의원리를실천하는것입니다. 이싸움에집중해나갈때우리안에성령의열매가맺혀져가는것을발견하게될것입니다.  

“믿음의 성숙 : 벗고, 입고, 더하라” (01/05/2020)

골 3: 5-17 제목 : 믿음의 성숙: 벗고, 입고, 더하라 <암송구절>“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3:14) 믿음생활은과거생활로회귀해서도안되고머물러서도안됩니다. 변화하고전진해야합니다. 이것이믿음의점진법(성화)입니다. 여기서방향은그리스도예수를닮는것입니다. 그리고변화는속사람뿐만아니라겉사람도함께변해야합니다. 곧옛사람의성품/본성과행동양식모두가변하는것이목표입니다. 변화를위해서는먼저옛본성을벗어버리기만해서되는것이아니고새로운옷, 곧성품을입기위해애써야합니다. 그리고나아가덧입어야할것이있는데그리스도의사랑입니다. 이는사람의힘으로할수없습니다. 주님을힘입어할수있습니다. 주님을힘입는다는것은주님께전적으로맡기고의지함으로고백하는것입니다. 그렇다면구체적으로구원받았다고하지만여전히습관적으로우리안에남아있는벗어버려야할옛사람의마음과행위들은어떤것들이있습니까? 음란, 부정, 사욕, 악한정욕, 탐심-우상숭배, 분냄, 악의, 훼방, 욕과거짓말들입니다. 이것들뿐이겠습니까? 표현할수없는죄의쓴뿌리들이있습니다. 부끄럽지만그것들을솔직하게볼수있어야합니다. 그래야보여지는것마다하나씩벗어버릴수있고자유로워질수있습니다. 고질적인습관을바꾸는것은결코쉬운일이아닙니다. 그러나주님을의지함으로할수있습니다. 이것이새사람을입는것입니다. 그리스도의성품을본받아새로운성품/본성이자리잡아가게되는것입니다. 새롭게입는성품은무엇입니까? 긍휼, 자비, 겸손, 온유, …

“부르심은 영원하다” (12/29/2020)

마28:16-20 제목 : “부르심은 영원하다” 부르심을받고그부르심에따라사는자가능력있는삶을사는자입니다. 2019년도한해동안어떠한삶을살아왔습니까? 또한어떠한삶을기대하고지향하고계십니까? 우리의삶을견인해온동기와힘은무엇입니까? 믿음생활의궁극적목적이무엇이었는가하는질문입니다. 그리고무엇으로말미암아그러한목적을두고달려오게하였는가하는질문입니다. 이러한질문들을통해서우리는주님의제자로서삶의본분과내용을다시금돌아보고재확인하는기회가필요합니다. 열심히바쁘게사는것도중요합니다. 하지만그보다더중요한것은방향입니다. 썩어질세상의욕망의부르심을좇아달리고있지는않은지, 목적과향방도모른채그저덩달아남들따라가고있지는않은지, 아니면주님의참제자로서주님의부르심에따라주님의나라를바라보며달음질하고있는지점검해보아야합니다. 나를향한주님의부르심이무엇인지, 그부르심에따라사는삶이얼마나위대하고능력이있는것인지다시금발견한다면주어진지나간한해, 그리고다가오는또한해가진정으로우리에게는값지고감격스런시간들이될것입니다. 우리에게주신이시간들을결코지리멸렬하게혹은허무하게낭비해서는안될것입니다. 그러기에는우리의인생이너무짧기때문입니다. 그러나우리가부르심을입은사명자로살아갈때에는늘생명력이있고그사명이다하기까지생명력있게살수있는것입니다. 예수님께서그부르심의자리로그의제자들을부르셨습니다.   본문이해) 우리의사명 – 주님의부르심과명령과파송!   부르심에삶의이유와능력이있습니다. 주님의제자는그사명이다하는날까지사는것이고부르심은영원합니다. 제자들을향하신주님의부르심은무엇입니까? 첫째, “갈릴리”로부르십니다. 둘째, “모든족속”에게로부르십니다. 셋째, 변혁/변화의자리로부르십니다. 믿음생활의생명력은부르심에있습니다. 부르심으로인해기쁘고감사하고생명의확신이있습니다. 주님이늘함께하심을경험하는능력의삶을살아갑니다. 부르심을따라살아가며인생의가치와보람을느끼며짧은시간들을통하여영원을바라보고준비합니다. 예배를통하여부르심을매순간재확인하며저마다의사역지로나아가는것입니다. 오늘예수님께서제자들에게주신명령과약속을다시금되새기면서우리로체스터한연연합감리교회가선교의사명공동체로다짐하는시간이되어야겠습니다. 이것이2019년도한해를넘어서 2020년도를대망하는이유가되어야겠습니다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가?” (12/22/2020)

“마24:32-44” 제목 :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가? 대강절을지나성탄절을맞이하면서과연저와‘주님을맞이할준비가되셨습니까?’ 라고묻는다면어떻게대답하실수있으시겠습니까? 주님을맞이한다는것은두가지로해석될수있습니다. 주님이오시는것과주님을맞이하러가는것입니다. 주님이오시는것은세상을심판하시기위해오시는종말의때이고, 주님을맞이하러가는것은개인의종말의때입니다. 어느쪽이든분명히그때가있습니다. 그리고중요한것은그때를위한준비가되어있느냐하는것입니다. 그런데어느쪽이든공통점은그때가오면모든일상의마침과동시에새로운장으로들어가고세상의모든것은다내려놓아야한다는것입니다. 그리고일순간에다가오기때문에준비가되어있지않으면맞이할수없다는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주님께서는분명히있을그때를예비하라고말씀하고계십니다 여러분은주님을맞이할준비가되었는지, 준비하는마음가짐으로살아가고있는지점검해보아야합니다. 분문이해) 주님을맞이할준비자세에관하여… 그러므로 ‘때’에대한관심을넘어서과연언제라도맞이할 ‘준비가되어있느냐’에믿음의관심을두고예비하는생활이있어야겠습니다. 주님의때를맞이하기위해어떤준비를해야합니까? 첫째, 믿어라! 둘째, 각성하라! 셋째, 깨어있어라! 첫성탄의때가그러했듯이주님이다시오시는때는그누구도알수없습니다. 또한중요한것은그때가언제냐에있지않습니다. 언제라도맞이할준비가되어있느냐, 준비하는삶을살아가고있느냐가핵심입니다. 아직그때가아닐것이라고여기는것도, 당장그때가가까왔다고게으름에빠지는것도준비된자세가아닙니다. 우리가 ‘에노스’임을망각하지않고주님을향한믿음, 소망, 사랑을지키며실천하는삶이깨어주님의때를준비하는자세인것입니다.

“대강절 : 잃어야 얻는 비결” (12/15/2019)

마 16:24-28 제목 : “대강절: 잃어야 얻는 비결” 머리로는잘알겠는데가슴으로행동으로실천하기어려운것이자기를부인하는것이고, 자기십자가를기꺼이지는일입니다. 진짜마음으로는자신을드러내고싶고자신의뜻과방식을세우고싶은것이보통사람의바램입니다. 할수있다면치욕스럽고부당한십자가가아닌자신이합당하다고여기는상급과칭송을받기원하는것또한보통사람에게있어서는당연한바램입니다. 그런데주님께서는그바램들을꺽으라고말씀하십니다. 진정으로생명을얻기를원한다면말입니다. 오히려자기를부인하고자기십자가를지는것이생명을얻는비결이라역설적으로말씀하십니다. 만일보통사람의바램과방법만존재한다면탐욕과갈등과미움과전쟁이끊이지않을것이고실제로세상이그러한이유가거기에있습니다. 저마다자기살겠다고살지만정작은자멸과공멸의길을가고있는것입니다. 세상에평화와생명이있을수없는이유입니다. 그러므로예수님께서이땅에오셨고또오시는이유는개인구원의차원을넘어서서주님을따르는제자로서주님이몸소보여주신자기부인의십자가의길을따르는결단과실천이있어야합니다. 거기에세상의진정한소망이있습니다. 이대강절을지나며평화의왕이신주님을우리가고대하는이유입니다. 본문이해) 주님께서몸소보여주시는생명의비결 – 자기부인과십자가의길 구원의소망은주님의제자로주님께서보여주신생명의원리, “자기를부인하고자기십자가를지고나를좇으라”를이루는데있습니다. 그러면잃어야얻는이생명의원리를실천할수있으려면어떻게해야할까요? 첫째, 비본질적인것에매이지않도록해야합니다. 둘째, 물질(소유)의미혹에빠지지않아야합니다. 셋째, 예수님을더욱깊게묵상해야합니다. 세상은평화를갈망합니다. 하지만결코평화롭지못합니다. 사람은영생을원합니다. 하지만죽음에대한공포와두려움에사로잡혀살아갑니다. 이러한세상의현실과인간존재의문제를해결해주시기위해예수그리스도께서이땅에오셨습니다. 그리고몸소생명의길의본을보여주셨습니다. ‘자기를부인하고자기십자가를지심’으로하나님께나아가는길을열어주신것입니다. 그리고우리를향하여그길을따르라말씀하십니다. 우리의생각과지식으로는할수없습니다. 그러나주님의길을따르고자할때에성령께서우리의심령을매순간도우십니다. 그리고주님께서는시작하신생명의역사를하나님의영광가운데다시오셔서이루시겠다약속하셨습니다. 이대강절에우리의유일한소망은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오셔서우리를다스리시고세상을구원하소서.

“대강절 : 하나님의 뜻을 배우라” (12/08/2019)

마 9:9-13 제목 : “대강절: 하나님의 뜻을 배우라” 세상에사랑이사라져가고있습니다. 사랑이란말은그어느시대보다도풍성하다못해차고넘치는데사람들의마음에는사랑에의심하고불신하고갈급해하고있습니다. “자녀들아우리가말과혀로만사랑하지말고오직행함과진실함으로하자”(요일3:18) 말씀대로행함과진실함이결여되어있기때문일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이땅에오심은세상을향하신하나님의긍휼하심의사건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행하신일을통해서진실한사랑이무엇인지발견할수있습니다. 인스턴트같은일시적이고자기중심적인사랑이아닌근본적으로인간존재를감싸안으시는영원한사랑을경험할수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그러한하나님의사랑을배우라고말씀하십니다. 거기에참소망과충만케하는기쁨이있기때문입니다. 그러면대강절을어떠한자세로어떻게맞이해야할까요? 말씀을통해우리를향하신하나님의사랑과긍휼히여기심을재확인하고배우는계기로삼아야합니다. 배움은익히고실천하고훈련하는과정을통해서이루어집니다.   본문이해) 내가만난예수님, 하나님의긍휼! – 마태   말씀에두신하나님의뜻을깨달아긍휼을베푸는사랑의사람들이되기위해배움의길로나아가야합니다. 하나님의긍휼하심을배우기위해서는… 첫째, 바로 ‘나자신’이하나님의긍휼이필요한대상이라는것을알아야합니다. 둘째, 율법적의가아닌사랑의의로구원이주어짐을알아야합니다. 셋째, 긍휼을알고긍휼을받은자가긍휼을베풀수있음을알아야합니다. 대강절을지나면서제자로서주님의말씀을제대로배워야합니다. 자신도모르게형식적이고내용이없는믿음생활을하고있지는않은지돌아봐야합니다. 하나님이바라시고뜻하시는바가무엇인지말씀으로돌아가겸손하게다시배워야합니다. 무엇보다도하나님의긍휼하심과은혜를입은자로서긍휼을베푸는자가먼저되어야합니다. “만물의마지막이가까왔으니그러므로너희는정신을차리고근신하여기도하라무엇보다도열심으로서로사랑할찌니사랑은허다한죄를덮느니라” (벧전4: 7 -8)”” 어느때나하나님을본사람이없으되만일우리가서로사랑하면하나님이우리안에거하시고그의사랑이우리안에온전히이루느니라”(요일4:12)이대강절에말씀처럼정신을차리고사랑을입은자로그사랑을통해하나님의사랑을증거해야겠습니다. 그것이대강절에주님의오심을준비하며우리가집중해야하는믿음생활일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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